Mr Young-hyun Lee

JoinTheLeaders 서부지역 멤버 전소영씨는 이영현 회장님을 2010년 OKTA 벤쿠버 차세대 무역스쿨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회장님의 두시간 남짓 되는 강의는 길었지만 정말 감명 깊은 이야기였습니다. 캐나다에 꿈을 가지고 오셔서 이 사회에서 성공하실 수 있었던 이야기. 그의 강의 주제는 “order today, deliver today”, 그리고 “끈질겨라, 장애물이 있다고 포기하지 마라” 였습니다. 깊은 감명을 받고 Follow The Leaders 시리즈를 위해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전소영씨는 회장님께 많은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려고 할 때 즘, 이영현 회장님이 다시 OKTA 벤쿠버 일로 오셨고,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 직후 회장님을 쫓아 내려가서 여쭈어보았더니, 이메일은 너무 많이 받으니 전화를 하면 된다고 하시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회장님의 끈질기고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을 따른 전소영씨는 저희 그룹 동부지역과 연결해 회장님과의 인터뷰를 토론토에서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을 하게된 동기는 무었이었고 이민생활은 처음에 어떠셨나요?

캐나다 오기전 한국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를 했었어. 스케이트에 적혀있는 "made in Canada"를 보고 자랐고 캐나다라는 나라가 머리에 박혀있어 아무것도 모른체 항상 마음속에 캐나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었지. 중고등학교때 대회에 나가다보니 스스로 굉장히 잘하는 선수라 생각했고 캐나다가서 몇년만 연습하면 최고의 선수가 되리라 믿었던거야. 그렇게 캐나다에 오게됬지. 어떻게 보면 단순 무식한 동기일지 모르지만 지금보면 단순한것이 성공의 비결이라 할수도 있겠다.

캐나다에 온다고 했을때 부모님의 반대하시지 않으셨나요?

가면 캐나다 얼음바닥에서 얼어 죽는다고 하시며 반대가 심했지. 형들은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와 Cornell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있는 판에 내가 캐나다에 가겠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많이 실망하셨아. 우등생이였지만 운동이 더 좋았었어.

이민 후 고생을 많이 하셨을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고생얘기를 시작하면 내일 아침까지 해도 모자를 지경이야. 어떻게 보면 그런 고생담은 창피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본인 자존심이나 위치보다는 한 학생이라도 부자를 만들어 주고 싶기에 가르쳐준다. 가장 큰 고생이라면 첫째는 영어, 둘째는 그당시 환전이200불까지 제한되었기 때문에 돈이 없었어. 1964년 전체 수출액 1억불에서 2005년 4000억불로 40년만에 4000배가 성장하는 위대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야. 정말 그시절에는 부족한 외화로 환전이 200불까지만 허용되었고, 1불짜리 200장을 받았는데 각장의 시리얼 넘버와 지장을 찍어야 될 정도로 달러가 귀했었어. 17일 정도의 생활비와 하키채가 가진 전부였지. 정말 단순하고 위험했고 한심했다.

아이스하키를 하시려다가 라이어슨 대학에 입학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캐나다에 도착해 길거리를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스하키를 하는사람이 없었어. 캐나다에 잘 못 온줄알고 크게 낙담을 하고 있을때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멀리 보이는 큰 건물로 가보라고 하셨어. 거기에 실내 아이스링크장이 있었는데, 그당시 한국에서는 주차장에 얼음판을 만들어놓는게 고작이었기 때문에 그 실내 아이스링크장을 봤을때에 문화적 충격은 굉장했었지.처음 6개월동안 너무나 달라진 운동환경으로 밤 늦게까지 혼자남아 훈련했어.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하기위해 대학입학을 하고 시합에 나가게 됬지만 작은 체격으로 2분도 못뛰어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어야하게 된거야.

더이상 선수생활을 못하게 되었을때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가족에겐 금의환향을 다짐했고 남자가 한 말은 무슨일이 있어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어. 책임을 질줄 알아야 성공한다. 자신의 책임에 대한 자존심이 오늘날까지 나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던 거야. 얼마든지 한국에 돌아가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 자살도 시도해 보았지만 삶의 의지를 느끼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 첫 강의에 99%는 못알아들었고 특히 12장 백지의 에세이쓰기는 반장도 못채웠다. 공부도 할수 없었고 돈도 없었어. 어느 하루는 하숙방에 날아들어온 파리가 너무 반가워 한국말로3시간동안 얘기한적도 있었어. 그정도로 한국사람이 그리웠고 외로웠다. 극도의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벽에 부딛친 사람처럼 머리가 멍했어. 이정도로 밑바닥까지 가봐야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한다. 볼수 있으면 다 보고 먹을 수 있으면 다 먹고 뭐든지 다 해보는게 좋아.

대학교 시절은 어떠셨나요?

대학교 졸업은 기적이었어. 하루3시간 택시운전으로 학비를 벌고 6시간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캐나다인들이 한가지만 해도 될 공부를 다섯가지를 해야 따라갈 수 있었어. 특히나 언어나 문화적 차이로 교양과목은 뜻도 모르고 그냥 외우는수밖에 없었지. 이렇게 노력끝에 캐나다인도 따라가기 힘든 과목들을 해냈고 Ryerson 대학에서는 이런 본인을 인정해준거야.

그러면 대학후에는 어떠셨어요?

David Crombie (그당시 토론토 시장) 교수의 조언으로 IBM에 입사하게 되었어. 높은 월급으로 교포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3개월만에 해고를 당했지. 문화적 차이와 의사소통이 문제였던거야. 그 후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회사에 취직할수도 있는데 왜 사업을 선택하셨나요?

이런식으로 가다간 한인사회의 리더가 되기 힘들다고 느꼈어. 취직해서 성공하기엔 끝이 없어 보였고. 성공을 하려면 조금은 단순해야되고 무모해질 필요가 있다.

이튼백화점 회장님을 만나게 된 사연이 있다는데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당시 난 회사 사무실도 없고 직원도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동물 장난감을 팔았었어. 혼자서 하루종일 Bloor & Bathurst에서 Scarborough까지 걸어다니며 8개월동안을 팔았어. 그러다 택시기사때의 경험을 떠올려 토론토에서 가장 부자동네를 찾아갔지. 경찰의 제제에도 불구하고 몇번이고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었어. 하지만 포기하지않고 계속 찾아간 끝에 문을 열어주고 차까지 대접해준 분이 이튼몰 회장이었던거야. 회장 내외는 이렇게까지 물건을 팔고다니는 정신을 높이 사 거래를 성사하게 되었지. 지성이 감천이라는 말이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배워야할 점이야.

사업은 본격적으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당시 캐나다에는 한국수출상품이 전혀 없었어. 그래서Buyer가 사고싶은 상품이 있으면 무조건 구해서 팔았었지. 약속한 물건이 있으면 무슨수를 써서도 구해줬다. 신용이 자산이야. 그리고 난 조국에 일조를 하기위해 굶어 죽는 일이 있어도 한국상품만 팔았다. 70년대는 "made in U.S.A.", 80년대는 "made in Japan", 90년대는 "made in China"를 팔아야 돈을 벌었고, 모든사람이 한국상품만을 고집해온 나를 손가락질했어. 하지만 지금은 내가 제일 부자다. 한 우물만 40년을 판 나를 모두 Mr. Korea라고 부른다.

사업에 실패도 하셨었다는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사방이 막혀있어도 하늘은 뚫려있어. 할수 있다고 믿으면 뭐든지 극복할 수 있어. 남 핑계대지 마라. 자신만 고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 방법은 마음뿐이다. 사업의 200%를 손해보면 방법이 없다. 그럴때는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만이 살길이야. 권투선수도 눈빛이 죽으면 끝이야. 정신을 단련시키고 어떤일이 있어도 할수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해낼 수 있어. 남이 흉을 봐도 자기자신은 버릴 수 없어.

네트워킹이 중요한데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나요?

바로 비결이 남 얘기를 잘 들을 줄 알고 분석할 줄 알아야돼. 예를 들어, 사람 둘이미국에서 선풍기가 잘 된데서 많이 실었어. “어, 그래? 선풍기 잘 나간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다 들었어. 그리고 캐나다에 나오자마자 선풍기를 찾아다녔어. 이 것을 듣고 끝내지 말고 실행에 옮길 줄 알아야돼. 그런데 캐나다에서 제일 큰 선풍기 회사가 걸렸어. 그런데 자기네 buyer, supplier, 공장 다 있다면서 내가 하려는 일이 안먹혀. 그래서 내가 매일 가는 거야. “우리 삼성에서 선풍기가 나오는데 이거 한번 써보라”고 하면 거기 사장이 저 사람 또 왔냐고 할 정도로. 그러다가 그게 20만 order가 들어왔어. 그런데 들어온 것으로 끝난게 아니야. 이젠 가격이 안맞아, 운반비가 40m 컨테이너에 350개 밖에 못들어가.선풍기 하나당 운반비가 15불이야. 선풍기 자체는 12불인데. 삼성전자에서 3일을 고민하는거야. 나는 20만대 가져다 준다고 약속했는데 거짓말 못 한다고 했어. 자존심이 있잖아. 나는 내가 말한 것에 대해서는 물불을 안가려. 그래서 내가 톱으로 선풍기를 세 조각내서 잘라버렸어. 그래도 작동이 잘 되는거야 그래서 그렇게 포장했어. 이 사건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 줄 누가 알았어. 1,980개가 들어가는거야. 그러니까 하나당 운반비가 2불이 되버렸어. 그랬더니 삼성에서 그 사건 후로 ‘명예임원’으로 임해줬어. Mr. 던 샤워라는 교수가 1953년에 한국 경주를 갔다왔다면서 김치 얘기를 하는데 우리 둘이 재료를 사다가 제대로는 아니지만 같이 해 먹으며 교수님과 친하게 지냈어. 그래서 나는 그 사람 과목은 공부를 안했는데 일년뒤에 나한테 빵점 주고 ‘sorry’라고 시험지에 썼지 모야. 그 때 나는 한국에서 배운 정서를 가지고 이해가 안가고 엄청 화났어. 그런데 그 사람이 나의 인생을 바꾼거야. 나는 공과 사를 구별을 할 줄 몰랐는데 그 때 나는 배운거야. 그 때 부터 나는 내 자신에게 얼마나 무서워 졌는지 몰라. 남한테는 관대하게 해도 내 자신한테는 용서를 안해줘. 친하면 친할 수록 더 잘 해야돼. 그런 문화와 생각의 차이. 교육의 차이. 그게 나중에 보니까 인간의 차이야. 나 자신을 그 때 보니까 이런 나라에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그걸 하나하나 고쳐나가다 보니까 편할 날이 하나도 없었어.

선풍기 사건 때 부터 평소 좌우명이신 Order Today, Delivery Today (OTDT) 가 생긴 건가요?

OTDT, 그게 내 인생 좌우명인데 그 때 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한거야.축구선수가 공을 넣으면 “어떻게 내가 넣었지?” 하는 것 처럼 어떻게 차다보니까 들어간거지. 나도 죽겠으니까 어떻게든 하려고 하다보니까 된거야. 인생도 마찬가지야. 내가 캐나다로 돌아오자마자 회사직원한테 OTDT를 써붙이라고 했더니 우리 캐네디언 직원들이 전부 기절하려고 했어. 오늘 주문한거를 오늘 주라니. 캐나다에서는 안돼, 최소한 3일은 걸려. 이것을 못하면 퇴근못하고 싫으면 사표쓰라고 했어. 그리고 얘기했으면 무조건 실행에 옮기라고. 그러니까 Canadian buyer들이 나를 신으로 모셔. 그것을 40년을 쌓으니까 빛을 본거야. 매출이 일년에 $100 million 까지 올라갔어.

OTDT는 꼭 비지니스에만 쓰여지지 않고 젊은이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은데요?

뜻이 바로 ‘즉시’야. 게으르면 안되고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된다는 거지. 예를 들어 퇴근하고 양말을 던지고 팽개쳐 놨으면 그걸 다음 날에라도 집어야 되지 않아? 사소한 것 하나라고 두번 할 바에는 즉시하라는 거야. 조그만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어. 조그만 것들이 뭉쳐서 크게 되면 터지는데 그것을 막아야돼.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 조그만 것은 우습게 봐. 자기가 환경을 잘 만들어야돼. 친구라고 만나는데 진짜 착해, 얘는 진국이야, 그래도 소용없어. 직원이 두명이 있는데 한 사람은 도무지 믿을 수 가 없어. 9시에 출근하라고 해도 10시에 오고, 5시에 퇴근하라 그래도 3시면 없어지고 5시 넘으면 전화도 안받어. 그런데 판매는 40%를 해. 다른 한사람은 점잖고 착하고 금고 열쇠까지 맡겨도 돼. 하지만 회사에는 도움이 하나도 안돼. 그럼 누굴 써야될까? 당연히 첫번째 사람을 써야돼. 이게 현실이야. 나는 속을 썩더라도 이걸 이용할 줄 아는 요령이 있어야돼. 그게 바로 비지니스 전법이야. 한마디로, 부자 되고 싶으면 부자된 사람을 만나. 지금부터 젊은 사람들은 목적을 만들어 놓지마. 희망은 물론 있어야지. 그런데 너무 질책하면 오히려 안돼. 노력을 열심히 해. 내 나이가 공부해야 할 나이면 공부 열심히 하고 직장 다니는 거면 직장 열심히 다니고. 그리고 지금은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놔. 그러니까 첫째, study, 지식없이 아무것도 안돼. 내가 Ryerson나온 덕분에 이만큼 된거야. 둘째, 인적 네트워크, 돌아다니면서 직접 만나는것.

전세계에 다니시면서 강의를 많이 하시는데 캐나다에 있는 한인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나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첫번째, 캐나다는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야. 여기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고민이 있다는것은 말도 안되고 행복에 겨운 얘기야. 두번째, 캐나다에서 영어도 못하고 돈도 없고 문화도 모르지만 부딪혔던 사람도 이렇게 됬어. 그런데 뭐를 못해. 안하는거야, 못하는게 아니고. 만약에 내가 지금 그 위치라고 하면 나는 여기서 사업 안하고 수상(Prime Minister)해. 그 정도의 포부가 있어야돼. 1세와 2세의 차이. 1세는 무식하지만 frontier정신이 있어. 엄마 아버지들이 뭘 알고 온게 아니라 그냥 헤치고 들어온거야. 그게 1세대들의 공통된 장점이야. 2세대들은 영어 잘하고 똑똑하고 다 조건이 되는데 안해. 개척정신이 없고 편하게 살기만을 원해.그런데 생각을 안해서 못하고 게을러서 못하고 그러다 보니까 기회를 놓치는 거야.

사업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첫째가 체력이고 둘째가 지식이다. 셋째가 판단력.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연결을 해준다. 남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그 찬스를 잡을 줄 알아야돼. 10년 후에 만나서 “누구시죠?” 하면 끝난거야. 기억력 좋은 사람만 성공하게 되있어. 그래서 나는 명함만 받으면 인상, 날짜, 기억할 수 있는 것 다 써놔. 메모를 틈틈히 해야돼. 비지니스를 해서 성공하고 싶다면 가상상법을 써보면서 자꾸 덤벼보라는 거야. 가만히 있으면서 편하게 있으려고 하면 안돼. 캐나다 사회에서 돈을 벌었으면 사회에 환원할 줄 알아야돼. 캐나다를 위해서 살아야돼. 그리고 한국에 기여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무역을 하면 한국 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으니까 좋아. 사회가 변할 수록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 할 줄 알아야돼. 특히 중산층의 변화를 잘 지켜봐야돼. 미래를 내다보고 그것을 지금부터 준비해야돼. 예를 들어, IT가 information technology의 약자인데, 그것도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뀜을 말하는 거야. 그런데 IT가 나한테는 Interest, Timing 이야. 이게 아주 무서운 거야. 아무도 나를 못 죽이지만 이 IT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어.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빌릴 수록 이자가 눈덩이처럼 커져. 어떤 조사에 따르면 회사들이 망하는 이유가 다 이자 때문에 망한다는 거야. 두번째, 타이밍이야. 똑같은 물건을 팔더라도 타이밍에 따라서 사업을 헛 하게 될 수 있어. 라면도 뜨거울 때 먹어야 하듯이 인생과 사업도 마찬가지야. 이 두개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달렸어.

OKTA 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세계 해외 한인 무역협회. 한국업체를 수입하는 수입업체끼리 모여서 만든거야. 지금은 전 세계에 61개국, 113개 도시에 6,000명의 멤버가 있어.

회장님이 북한에서 trade mission 을 가셨던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북의 총리가 나와 동급으로 초대를 해서 인민궁전에 갔었어. 잘 살고 싶으면 우리를 부르고 세계시장에 팔 수 있는 물건을 준비하라고 했어. 그래서 165명 모시고 고려민항을 타고 버스 4대로 갔어.한국정부에서도 기절했던 사건으로 남았어.

왜 북한에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북한이 너무 못 사는거야. 그래서 조금이나마 잘 살게 해줄려고 갔어. 근데 정말 수입할게 하나도 없더라. 고무신, 풍금, 치마저고리, 축구공 이런것 밖에 없더라고. 눈물이 나더라. 그래도 우리조국 아니냐. 도와주고 가자, 그래서 디자인하는거, Invoice 쓰는거, 품질관리하는거 다 가르켜주고 왔어. 그래서 지금 많이 발전했을거야.

회장님 개인적인 계획이나 목표가 무엇인가요?

목표가 애들 기르는거야. 내가 지금 능력껏 할 수 있는건 그거야.

회장님껜 Leadership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리더쉽은 희생이야. 희생할 줄 아는사람이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어. 남의 위에 존재하려고 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야, 그건 독재자야.

모든걸 스스로 하도록 해라

오래전 어려웠을때 돈을 벌고나서 밥상을 먼저살까 침대를 먼저살까 고민했던 적이 있어. 밥상을 먼저 사기로 하고 17불주고 상을 하나샀는데, 매일 바닥에 업드려서 먹다가 상에서 먹으니까 세상에 밥이 그렇게 맛이 있을수가 없더라구. 나중에 침대를 샀을땐 너무 좋아서 잠을 잘 수 가 없었어. 그러니까따 머든지 자기가 해야되. 내가 정성들여 사고 만든 모든것들이 좋아.

과정을 중요시하도록 해라

내가 캐나다사람들로부터 느낀건, 이 사회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거야. 반면 한국사회는 결과물을 중요시하더라. 이걸 알아야 성공해. 과정을 반드시 중요시하게 생각해야해. 올라가는걸 경험했으면 내려가는 것 도 알아야해. 인정해야해. 괴로움이 오면 피하려고 하지마. 부닥쳐보라고. 그리고 해결해 나가야지 그러면 면역력이 생겨서 더 잘 헤어나갈 수 있어. 그러지 않고 피하다가 나중에 한방 맞으면 끝나.

정주영회장 일화

정주영회장에 관한 일화가 있어. 1972년에 외국있는 어느 선박회사를 찾아가 돈을 꾸으러가서는 아무 track record없이 500원짜리 한국지폐에 그려있는 거북선을 회사사장에게 보여주며 500년전에 우리 선조들이 이런 배를 만들었는데 돈만 꿔주면 500년전에도 이렇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설득해서 돈을 꾸어와 현재 현대중공업이 시작된 거야. 참 앞뒤가 맞지않는 일이지. 그런데 그 선박회장이 후에 한말이 정주영회장의 눈빛을 보고 절대 거짓말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믿고 돈을 꾸어주었다고 했어. 결국 정주영회장은 57배로 갚았고.

이영현 회장님 프로필

1971   UNIVERSITY OF RYERSON (상대) 졸업
1971   영리트레이딩 무역 회사 설립
1974   화랑 팀 창단 (최초 캐나다 동포 체육인 단체)
1981   제 1기 평통 위원 - 10기 평통위원 
1981   세계 한인 교포 무역인 연합회 초대 부회장 (OKTA) 
1985   모국 대통령 표창장 - 수출 증진 기여
1987   SUNG LEE DEVELOPMENT CORP.사 설립 
1989   TEGRA PHOTO INC. 사 설립 
2000   모국 무역의날 "수출산업훈장" 수상 
2001   IDAS 홰외 1기 졸업 
2002   (사)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World-OKTA) 회장 
2002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2004   평양 OKTA 무역 상담회 단장
2009   사단법인 대한민국건국회 부회장 

인터뷰 날짜: 2011년 5월 16일
인터뷰 진행: 이주석, 임현우, 윤선아
사진: Gerald Law
편집: 김도윤, 이주석, 윤선아

위 인터뷰의 개인적인 의견들은 JoinTheLeaders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